경북안동 썸네일형 리스트형 물안개. (경북 안동 월영교에서 담다.) 경북 안동 월영교 아래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는 정말 장관이었다. 몇 번이나 가서도 보지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물안개가 나를 영접했다. 이 물안개를 보는 순간 김종환 님의 '사랑을 위하여'가 콧노래로 절로 나온다. . . .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더보기 안갯속으로.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하고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로 월영교는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안갯속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가 어찌 그리도 멋진지 카메라 셧터를 눌러본다. . . .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더보기 월영교. 어제(8월7일) 비도 오고 월영교를 가면 좋은 그림을 만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이 새벽에 코로나도 쉬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냅다 달린다. 아침 5시에 출발을 해서 도착하니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월영교를 완전히 덮었다. 안개라도 있으니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장면보다는 좋다. 저 안개가 지나가려면 모르긴 해도 오전 10시는 넘어야 할 것 같다. 일찍 철수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보기 체화정. 안동 체화정(安東 棣華亭)*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2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건축물이다.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2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51호로 지정되었다. ※ 안동 체화정은 1761년(영조 37)에 창건하여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이 학문을 닦고 형인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기거하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정자 이름인 ‘체화(棣華)’는 형제간의 화목과 우의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자 앞쪽의 삼층도지(三層島池)라는 못에는 3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정자 뒤쪽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수목이 울창하여 경관과 지세가 좋다. 더보기 한국의 정자(10) - 안동 고산정. 한국의 정자(10)-안동 고산정(孤山亭)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정유재란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바 있는 성성재 금난수의 정자이다. 고산정은 안동팔경(安東八景)의 하나인 가송협(佳松峽)의 단애(斷崖)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자의 주위에는 외병산(外屛山)과 내병산(內屛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낙동강의 상류인 가송협의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獨山)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 .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74호로 지정되어 있다. ↓ 강 건너서 담은 고산정의 모습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3m가량의 자연석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다음 기단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 정자의 특징.. 더보기 외딴집. 들녘 멀리 외딴집에 눈이 오니 더욱 외로워 보인다.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서 담다.) 더보기 초가 설경. 2010년 눈이 많이 오던날 찾은 경북 안동 민속촌의 초가의 모습이다. 이제는 우리들 동네서는 이런 초가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민속촌에서라도 이런 초가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의 눈이 참 복스럽다. 더보기 금국. 이 금국으로 그 유명한 '안동 가을 신선 국화차'를 만든다. 더보기 봉정사(1). 대한 불교 조계종 고운사의 말사. 672년(문무왕 12) 의상, 또는 능인 대덕이 창건하고 화엄강당을 지어 신림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6·25전쟁 때 경전과 사지가 모두 소실되어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극락전(국보 제15호)·대웅전(국보 제311호)·화엄강당(보물 제448호)·고금당과, 승방인 무량 해회·만세루·우화루·만세루·우화루 등의 당우, 고려시대의 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등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절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의 문.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 더보기 한국의 서원(3) - 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서원. 2019년 7월 6일,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적 제260호. 1613년(광해군 5)에 창건되었으며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고려 말기 풍산현에 있던 풍악 서당을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29년 유진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 14) 현재의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로.. 더보기 체화정. 오늘(8월 12일) 장마도 주춤해지고 모처럼 날씨도 좋고 해서 여기를 방문했는데 장마 끝에 배롱나무의 꽃이 졌는지 아직 못 핀지 구분은 안되고 열심히 담아보았는데도 작년에 담은 것보다 못해서 2019년 8월에 담아 둔 사진을 먼저 올려본다. 체화정은 1985년 10월15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51호로 승격하였다. 체화(棣 산앵두나무체, 華 빛날 화)란 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뜻하는 말이다. 정자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층(重層) 팔작지붕 집이다. 앞에는 3개의 인공섬이 있는 연못이 있다. 안동 체화정은 1761년에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의 맏형인 옥봉(玉峰)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이곳에 기거.. 더보기 초가집. 우리 어릴 때는 동네에 많은 초가집이 있어 심심찮게 보아왔고 그 속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초가집을 스레트 지붕으로 개량을 하니 이 초가가 모두 없어졌다. 지금은 민속촌이나 하회마을과 같은 보전지구나 가야 이 초가집을 볼 수 있다. 내가 담은 이 초가집도 사람은 살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사는 것 같이 빨랫줄에 몇 가지를 널어놓은 정도가 사는 시늉만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초가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더보기 휴식. 벌써 여름인가 보다. 하회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낙동강변 벚나무 길 그늘에서 더위를 피한 모습에서 2020년 여름은 이렇게 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더보기 하회마을 섶다리. 하회마을 섶다리는 하회마을 만송정 앞에서 옥연정사 방면으로 길이 114m, 폭 1.5m의 나무다리이다. 나무와 솔가지, 흙으로 이뤄져 있으며 중심부 기둥을 보강해 설치했다. 하회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섶다리를 거쳐 옥연정사와 화천서원을 둘러보고 하회마을 부용대에 올라 한눈에 펼쳐진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좀 더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섶다리는 하회마을 입장권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다. ↑멀리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옥연정사이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88호. 유성룡(柳成龍)이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집필한 곳으로 전하여오는 바, 그의 만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의 화천(花川) 북쪽 부용대(芙蓉臺) 동쪽 강가에 자리 잡고 있다. 더보기 예안 국민학교. 지금은 폐교가 되어 없어진 학교. 옛날 안동호가 들어서기 전에 자리한 곳, 안동호에 물이 차면서 수몰된 학교. 그 당시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선성수상길 그 자리에 추억의 사진들을 전시해 지난 날을 회상해 보고 당시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져 본다. 여기서 사진이 아니라면 이런 자료를 남길 수 있었겠는가?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경북 안동 선성수상길에서 담다.) 당시에 음악시간이 되면 옆반에서 사용하던 풍금을 들어서 가지고 오고 음악시간이 끝나면 다른반에서 또 가져가서 사용을 하고..... 풍금 한대로 한학년이 공동으로 돌아가면서 사용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더보기 한국의 서원2-도산서원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時習齋)라 하고 휴식하던 서편마루를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였다. (안내 책자에서 발췌)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