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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문화재 탐방 #48- 영주 숙주사지 당간지주. 영주 숙주사지 당간지주는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주 소수서원을 가면 만날 수 있다. ※ 참고로 국보(보물) 몇 호를 가린 것은 이제는 연번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국보(보물)로 기록한다. 더보기
구름버섯. 버섯의 하나. 운지버섯이라고도 하며 침엽수의 고목 등에 일년 내내 자생한다. 구름이 겹겹이 모여 있는 형태로 생겼으며, 갓 부분은 밝은 흙빛이나 회색 빛을 띤다. 효능으로는 항암, 면역력 강화, 혈관 관련 질병 예방 등이 있다.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에서 담다.) 더보기
문화재 탐방 #37-안향 영정(국보).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하고 섬학전을 설치하여 이를 보급한 고려의 문신. 초명은 유, 자는 사온, 호는 회헌이고 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해 교서랑을 거쳐 직한림원이 됐다. 문교부흥의 기운이 소생하기 시작한 충렬왕 때 원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원나라를 왕래하며 학풍을 견학하고 이를 최초로 국내에 들여왔다. 이는 한국 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고려의 불교세력과 대항하고 나아가 그것을 압도하면서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으로까지 성장했다. (다음 백과에서 발췌) 위 영정은 소수서원 영정각에 있는 복사본이다. 원본은 소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영정은 국가 지정 문화재 국보 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더보기
호강. 강아지가 유모차를 타고 참 호강하는 것 같다. 소수서원 앞에서 만난 이 강아지는 애완견 출입금지로 입장을 못하고 입구에서 혼자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이 더운 날 애처롭기만 하다. 이 순간은 호강에서 좀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주인이 간 방향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다. 더보기
문화재 탐방 #37-소수서원 강학당. 오늘(08.20일)도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소수서원을 찾았다. 이 강학당은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이 1543년(중종 38) 군학사(郡學舍)를 옮겨온 것이다. 전체적으로 큰 대청을 형성하고 방은 한쪽에만 있다. 대청 북편에는 명종의 친필인 ‘紹修書院(소수서원)’ 편액이 걸려 있다. 2004년 4월 6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403호로 지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더보기
탱자나무 꽃. 탱자나무에 꽃이 핀다. 예전에는 과수원 담장으로 많이 심어었는데 지금은 잘 보이 지를 않는다. 이제 봉오리를 맺는데 제일 높은 곳에 한송이가 피었다. 탱자나무 열매는 보았지만 꽃은 처음 본다. 300mm 망원으로 당겨도 별 효과가 없다. (경북 영주시 선비촌에서 담다.) 더보기
고향의 봄. 지금은 이런 초가를 민속촌이나 가야 만나지만 우리 어릴 때는 동네가 거의 이런 초가집이었다.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이런 초가집을 자주 찾아본다. (경북 영주시 선비촌에서 담다.) 더보기
벚나무.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 정문 주차장에 서있는 벚나무의 수형이 너무 멋지고 예쁘서 담아 보았다. 더보기
제비꽃 동산. 소수서원 언덕에 제비꽃이 덮었다. (소수서원에서 담다.) 더보기
담장 밖 벚꽃. 우리 동네도 이제야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것 같다. 담장과 벚꽃이 잘 어울린다.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에서 담다.) 더보기
벚나무 벚꽃나무가 이렇게 큰 키는 처음 본다. 얼마나 키가 큰지 지나는 사람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소수서원을 지나다 벚꽃이 잘 피었길래 잠시 멈추고 한 장을 담았다. 벚꽃도 지금이 절정이다. 더보기
너는 너 나는 나. 두 분이 부부로 보이는데 무엇을 잡수는데도 뚝 떨어져서 각자 먹는 일에만 열심인 것을 보고 재미도 있고 우습기도 해서 한 장 담았다. 우리 세대 부부들도 저렇게 내외를 하면서 앉지는 않는데..... 완전 국보급 부부를 만났다. (소수서원 솔밭에서 담다.) 더보기
초가 지붕에는...? 지붕을 새로 이을 때도 되었는데 지붕이 썩어서 잡초들만 자리를 잡누나. 이번 가을 벼 수확이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새로 지붕을 이겠지. 기대해 본다. 더보기
문화재 탐방 #16-학자수(學者樹). 소수서원은 흰 눈을 머리에 끼얹은 듯한 소백산의 비로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명종으로부터 사액을 받기 전에는 ‘백운동서원’으로 불렸다. 동쪽에는 죽계천이 서원 주위를 어루만지듯 흐르고 입구엔 수백 그루의 적송들이 서원을 에워싸듯 들어서 있다. 유생들이 소나무의 장엄한 기상을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적송들을 심었다고 한다. 겨울을 이겨 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 내고 참선비가 되라는 의미로 후대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학자수’라고 부른다. 현재는 그 수가 수백 그루에 이르러 숲을 이루고 있으니 ‘학자수림’(學者樹林)이 됐다. (서울신문 3월 9일자 27면에서 발췌) 더보기
나들이. 가을 느낌이 드는 이 길을 담고 싶어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리는 중에 나들이를 나온 두 아들과 엄마가 나의 앵글 속으로 들어온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 산 교육을 위해 함께한 가족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날씨도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주말이다. (경북 영주 선비촌에서 담다.) 마차를 끄는 당나귀에게 먹이주기 체험 현장이다. 엄마는 아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정신없이 셧터를 누른다. 나도 정신없이 셧터를 누른다. 당근 몇 조각을 한 봉지에 1,000원을 받고 팔고 있더구먼요. (경북 영주 선비촌에서 담다.) 더보기
한국의 정자(2)-경렴정. 소수서원(사적 제 55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백운동서원은 퇴계 이황(李滉)이 명종에게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과 서적·노비를 하사받다. 소수서원의 경렴정(景濂亭)은 누각이 아닌 정자이다. 정자에는 ‘경렴정’이란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멋스럽게 초서로 쓴 편액은 이황의 제자 황기로의 글씨다. 황기로가 스승 앞에서는 떨려서 쓸 수 없다고 하자 이황이 자리를 비켜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소수서원은 50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출처: 사진과 함께하는 여행(빛그림) 사진: 장춘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