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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갤러리

의암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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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으로 불리다가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이 바위로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후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하여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의암 바위 옆에 새겨진 '의암'이라는 글씨는 정문부의 유언에 따라 그의 둘째 아들 정대륭이 

전서체로 쓴 글씨인데 남강에 물이 찼을 때는 안보이다가 물이 빠지면 보인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진주성에서 담다.)